대항해 시대의 숨결이 깃든, 포르투갈 수도원 에그타르트 이야기

thumbnail - 파스텔 드 나타(Pastel de Nata)는 18세기 포르투갈 제로니무스 수도원 수도사들이 다림질하고 남은 달걀노른자를 이용해서 만든 음식이다. 이 음식이 마카오로 전해지면서 우리가 잘 아는 에그타르트가 됐다. 챗GPT
파스텔 드 나타(Pastel de Nata)는 18세기 포르투갈 제로니무스 수도원 수도사들이 다림질하고 남은 달걀노른자를 이용해서 만든 음식이다. 이 음식이 마카오로 전해지면서 우리가 잘 아는 에그타르트가 됐다. 챗GPT


포르투갈의 수도 리스본 남서쪽 벨렝 지역에는 제로니무스 수도원(Mosteiro dos Jerónimos)이 거대한 위용을 자랑한다. 이 수도원은 단순한 건축물을 넘어, 포르투갈 대항해 시대와 달콤한 디저트의 역사를 동시에 품은 곳이다. 우리가 흔히 아는 에그타르트의 뿌리인 ‘파스텔 드 나타‘(Pastel de Nata)가 바로 이곳 수도사들의 손에서 탄생했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수도복 다림질에서 시작된 혁명, 파스텔 드 나타18세기 제로니무스 수도원의 수도사들은 수도복을 다림질할 때 달걀흰자를 풀 먹이듯 사용했다. 이 과정에서 엄청난 양의 노른자를 어떻게 처리할지가 고민거리였다. 이를 그냥 버리기 아까웠던 수도사들이 기발한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남은 노른자로 달콤한 커스터드를 만들어 페이스트리 반죽에 담아 장작불에 구워낸 것이다. 이렇게 탄생한 것이 지금의 ‘파스텔 드 나타‘다. 이 달콤한 간식은 포루투갈의 식민지였던 마카오로 건너가 현재 우리가 즐겨 먹는 에그타르트의 원형이 됐다. 일부 전문가는 파스텔 드 나타가 에그타르트 탄생에 영향을 준 것은 맞지만, 두 음식은 엄연히 다르다고 주장한다.

thumbnail - 제로니무스 수도원이 문을 닫으면서 수도사들로부터 ‘파스텔 드 나타’ 레시피를 넘겨받은 곳은 현재 리스본에서 가장 대기 줄이 긴 것으로 유명한 ‘파스테이스 드 벨렝’(Pastéis de Belém)이다. 파스테이스 드 벨렝 공식 SNS
제로니무스 수도원이 문을 닫으면서 수도사들로부터 ‘파스텔 드 나타’ 레시피를 넘겨받은 곳은 현재 리스본에서 가장 대기 줄이 긴 것으로 유명한 ‘파스테이스 드 벨렝’(Pastéis de Belém)이다. 파스테이스 드 벨렝 공식 SNS


수도원 몰락과 함께 탄생한 ‘파스테이스 드 벨렝’파스텔 드 나타의 전설을 고스란히 간직한 가게가 바로 ‘파스테이스 드 벨렝‘(Pastéis de Belém)이다. 19세기 초 나폴레옹 전쟁으로 포르투갈 왕실이 브라질로 망명하고 본국이 프랑스 점령과 영국의 영향력 아래 놓이면서 1822년 자유주의 헌법이 제정되고 사실상 왕정이 폐지됐다. 이로 인해 오랫동안 왕실의 보호를 받던 교회와 수도원들이 몰락하게 됐다. 제로니무스 수도원 역시 문을 닫을 수밖에 없었다.

궁지에 몰린 수도사들은 생계를 위해 ‘파스텔 드 나타’ 레시피를 근처 정제소에 넘겼는데, 이 정제소가 1837년 수도원 바로 옆에 문을 연 가게가 지금의 ‘파스테이스 드 벨렝’이다. 오늘날 이곳은 리스본에서 가장 긴 대기 줄을 자랑하며, 포르투갈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필수 코스로 자리잡았다. 이곳을 방문하는 것은 단순히 맛있는 에그타르트를 맛보는 것을 넘어, 포르투갈의 역사와 전통을 경험하는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thumbnail - 제로니무스 수도원은 ‘바스쿠 다가마’의 인도항로 발견을 기념하여 마누엘 1세의 명령으로 세워졌다. 1940년까지 수도원과 학교, 고아원 등의 용도로 사용되었고 1983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다.
제로니무스 수도원은 ‘바스쿠 다가마’의 인도항로 발견을 기념하여 마누엘 1세의 명령으로 세워졌다. 1940년까지 수도원과 학교, 고아원 등의 용도로 사용되었고 1983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다.


대항해 시대의 염원, 마누엘 양식의 걸작제로니무스 수도원은 단순히 맛있는 디저트의 발상지를 넘어 포르투갈 대항해 시대의 유산이기도 하다. 1496년 포르투갈의 마누엘 1세 국왕은 바스쿠 다가마의 성공적 인도 항로 발견을 기원하며 수도원 건립을 명령했다. 1501년 시작된 공사는 무려 100년에 걸쳐 진행되었고, 기존 고딕 양식에 바다와 항해를 상징하는 장식이 가미된 독특한 마누엘 양식 건축물로 탄생했다.

이 수도원은 1940년까지 학교와 고아원 등으로 활용됐고, 1983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돼 역사적·건축학적 가치를 인정받았다. 특히 수도원 오른쪽에 있는 산타 마리아 성당은 바스쿠 다가마가 인도 항해를 떠나기 전 기도를 올렸던 곳으로 유명하며, 지금도 그의 석관이 안치돼 방문객들에게 감동을 선사한다.

제로니무스 수도원은 포르투갈의 황금기였던 대항해 시대의 웅장한 꿈과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희망, 그리고 달콤한 미식의 역사를 동시에 담아낸다. 단순한 관광을 넘어 시간 여행을 통해 포르투갈의 특별한 과거를 마주하는 경험이 될 것이다.

한정구 칼럼니스트 deeppocke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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